참으로 바쁘고 즐거운 9월이었다.
키아프 X 프리즈 서울과 미술주간을 맞아 여기저기 굵직한 전시들이 많이 열려 휴일마다 갤러리 순회 스케줄을 짜느라 행복했었다^^ 평소 이름 한 번씩 들어봤음직한 유명 작가들은 물론이고 세계 속으로 약진하고 있는 젊은 한국 화가들의 새로운 전시들도 많이 있었다.
오늘은 그중 유쾌한 마음으로 쉬어갈 수 있었던 그림을 소개하겠다.
8월 9일부터 9월 13일까지 학고재에서 진행했던 이우성 작가님의 개인 전시 <여기 앉아보세요 (come Sit with Me)>이다.
이우성 작가님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림 잘 그리기로 소문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차원적으로는 사실적으로 잘 그릴 때 이런 말을 쓸 수도 있고, 그림에 의미를 잘 담아내거나 색을 잘 활용할 때, 규모와 구도를 잘 짤 때, 혹은 언급한 외에도 여러 요소들을 조화롭게 잘 엮어내어 어떠한 감동이나 생각을 던져줄 때 그림을 잘 그린다고도 할 것이다. 전시를 둘러보고 내가 생각한 이우성 작가님은 자칫 흘려보낼 수도 있는 짧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작가였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걸개그림 <과거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은 이번 전시가 어떤 분위기일지 바로 알게 해 주었다. 일상적인 구도와 흔히 인스타 감성이라 하는 예쁜 컬러 톤 , 바닷가를 거닐다 흔하게 보았을 돌무더기라는 소재로 보아 현대감성의 그림 전시인가 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돌들에 새겨진 것들이 원시 기호 같다. 그런데 또 그 기호들을 자세히 보니 현대사회의 물건들이다. 비행기, 자동차, 노트북, 각 나라말로 쓰인 ‘사랑해’, 하트, 마주 보는 두 얼굴 등등.. 현재 모습, 생활의 찰나를 원시인들이 암벽에 견고히 남긴것처럼 지금을 남김을 비유하고 싶어 원시 기호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인가 유추하다가 전시 설명을 보니 아, 보인대로 느낀 게 맞는구나 싶었다.
‘이번 개인전은 2018년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동굴에서 발견된 4만 년 전 동굴 벽화의 손바닥 스텐실 그림에 감화되어 제작한 프로젝트이다. 스페인 알타미라, 프랑스 라스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울산 반구대 등 시공간에서 차이가 나지만, 하나로 통하는 보편성이 있다. 당시 사람들이 느꼈던 삶(일상)의 환희와 자연의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예찬이다. 이우성은 옛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시공간의 역동성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름다운 신호를 후대에 남기는 것이 회화의 본령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우성 작가님의 전시는 쉽게 이해되고 편하게 다가오는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무얼 표현한 걸까? 왜 이렇게 그렸을까? 이런 복잡한 생각 없이 단순하게.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림에서 느껴지는 감성에 공감하고 방울방울 추억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으면 충분했다. 작가는 그간 진행한 모든 전시회 제목과 작품 제목을 순우리말로 지었는데 그만큼 우리 것, 우리 시대, 우리 공간에서 펼쳐지는 모든 일상과 사건을 중요시한 듯하다.
전시 제목과 같은 <여기 앉아보세요>는 수박화채 연작이다. 키아프에도 출품된 이 그림은 화면 가득 색감 좋은 수박 안에 시원한 얼음과 수박조각이 있다. 한눈에 딱 봐도 별 7개 박혀있을 것 같은 탄산음료가 콸콸콸 쏟아부어지고 있고, 둥둥 떠있는 수박 사이로 탄산 거품이 가득 올라있는 게 보인다. 그렇다. 이것은 여름 그림이다. 작가는 ‘여름노래’(섬머송)이 있듯 그림에도 ‘여름그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그림을 연출했다고 한다.
수박화채 옆에는 대가족이 모여있는 그림이 있다. 역시나 직관적인 제목과 주제이다. 아이가 있는 집이면 으레 모든 일상이 아이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는 자신을 향한 온 가족의 애정과 관심이 너무나 당연해서 대수롭지 않고, 사진 찍을 때마다 렌즈를 응시하는 것조차 아무렇지 않다.(모든 부모 공감 = 핸드폰 갤러리 가득 아이 사진…) 정면을 응시하며 가족에 둘러싸인 아이와 부부, 형제, 부모.. 다양한 가족 구성원의 자연스러운 시선과 접촉, 사진 찍을 때마다 나오는 특유의 아주 약간 많이 어색하지만 대외적인 친밀함을 보여주려 하는 조부모님의 포즈. 화목하게 어우러진 사람들을 둘러싼 참외, 수박, 김밥, 계란. 소풍 때면 흔히 싸가는 과일과 먹거리들은 그림 속 인물들이 이런 흔한 음식들을 나누어 먹음직한 더 친밀한 사이-가족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어쩌면 한국인이 아니면 이해하지 못할 소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대형 걸개화이다. 관람일에 우연히 학생 관람객들에게 그림에 대해 설명하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같이 들을 수 있었다. 남는 자투리천들이 아까워 이어 붙여서 그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가까이서 보면 서로 다른 사이즈의 천들이 박음질로 이어져있는 게 보였다. 작가와 작가의 친구들, 그리고 그중 한 친구의 딸을 한자리에 불러 담은 찰나를 그림으로 그렸는데, 이 따님 덕분에 그림이 더 현실적이고 풍부해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각양각색으로 서있는 모습과 표정들이 흡사 동창들 모임에서 ‘여기 모여봐~ 한 장 찍자!’라고 하며 담은 모습 같다. 해 질 녘, 맛있는 식사와 술을 곁들이며 근황 이야기를 나누며 왁자지껄한 그 속에 나도 일원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다.
이처럼 이우성 작가가 극화한 우리가 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들은 굉장히 따스하고 예뻤다. 작가님이 중요시한 것은 이런 작고 소중한 부분들이 만나 전체를 이루어 구성하는 서사였다고 한다. 전시를 다 돌아보고 나서 작가님의 말을 염두에 두고 그림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자투리 천이 모여 하나의 큰 그림이 된 것처럼, 흘러가버릴 어여쁜 일상의 작은 조각들이 모여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만들어졌다. 여름 끝자락 노을 지는 시원한 저녁처럼 기분 좋고 예쁜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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