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볼까?/그림리뷰9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 예술가가 여기 있다 (The Artist is Present)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세계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행위 예술가이다. 1946년생으로 스스로를 퍼포먼스계의 할머니라고 부르는 이분의 작품 시리즈를 보게 되면, 대중들이 흔히 아는 우리나라의 행위예술가들은 순한 맛이다 못해 이유식 내지는 환자 유동식처럼 느껴질 정도다. 세르비아 출신의 마리나는 군 요직에 있던 부모님 덕에 가정환경은 유복했지만, 서로 각방을 쓰면서 머리맡에 총을 두고 잘 정도로 불화가 깊던 부모님과 학대에 가까운 경직된 가정교육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상당히 과격한 기질을 가진 예술가로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마리나의 작업들은 대부분이 굉장히 과격하다. 알몸상태에서 공업용 선풍기를 기절할 때까지 얼굴에 쐰다던지, 칼 끝으로 손가락 사이를 쉴 새 없이 왕복하며 내리친다던지... 그중 가장 충격적.. 2023. 10. 20. 아니쉬 카푸어 : 반타 블랙 국제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아니쉬 카푸어의 개인전이 다음 주면 종료된다. 한국에선 7년 만에 열리는 데다, 여러 의미로 Hot한 예술가의 작품들이! 무료로! 그것도 서울에서! 진행되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 늦기 전에 한 번쯤은 가 보셨으면 하는 마음에 뒤늦게나마 전시회 정보를 공유해 본다. 전시 정보 🏛 장소 : 국제갤러리 (서울 종로구 삼청로 54) 🚌 대중교통 : 3호선 안국역/경복궁역, 5호선 광화문역에서 도보 10~15분. 마을버스 이용 시 삼청동 방면 11번 탑승 후 정독도서관 정류장 하차. 🚗 주차장 : 없음. 근처의 공영주차장 혹은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 입장료 : 없음 (*현장 상황에 따라 입장 대기 혹은 조기 마감 가능성 있음) ⏲ 운영시간 : 10:00 ~ 18:00 (일요.. 2023. 10. 14. 이우성 - 여기 앉아보세요 참으로 바쁘고 즐거운 9월이었다. 키아프 X 프리즈 서울과 미술주간을 맞아 여기저기 굵직한 전시들이 많이 열려 휴일마다 갤러리 순회 스케줄을 짜느라 행복했었다^^ 평소 이름 한 번씩 들어봤음직한 유명 작가들은 물론이고 세계 속으로 약진하고 있는 젊은 한국 화가들의 새로운 전시들도 많이 있었다. 오늘은 그중 유쾌한 마음으로 쉬어갈 수 있었던 그림을 소개하겠다. 8월 9일부터 9월 13일까지 학고재에서 진행했던 이우성 작가님의 개인 전시 이다. 이우성 작가님은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림 잘 그리기로 소문난 사람이라고 한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1차원적으로는 사실적으로 잘 그릴 때 이런 말을 쓸 수도 있고, 그림에 의미를 잘 담아내거나 색을 잘 활용할 때, 규모와 .. 2023. 9. 20. 정영주 - 동네 시리즈, 공간의 향수 무척이나 길고 더웠던 여름이 물러가고 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리면 저녁이 지나 밤이 다 되어가는 시간임에도 쨍하던 햇살마저 그 끝이 짧아졌다. 이전보다 이르게 땅거미 지는 퇴근길의 아파트 단지에는 한 집 두 집 불이 켜진다. 문득 그 광경이 정영주 작가의 달동네 시리즈와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영주 작가의 달동네 시리즈는 어릴 적 언젠가의 어떤 순간을 떠오르게 한다. 한참 잊고 있어서 머릿속 어딘가에서 엉키고 뭉뚱그려져 있지만, '어린 시절의 동네'라고 하면 으레 머릿속에 그려지는 풍경 그리고 추상적인 기억들을 말이다. 나의 기억속에서 골목길 안의 나는 정신없이 놀다가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과 서늘해진 공기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 훌쩍 넘었음을 깨닫는다. 놀이의 흥분이 가라앉고 어두운 보랏빛이 퍼.. 2023. 9. 1. 르누아르 - 빛과 색 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화가를 묻는다면, 난 언제나 첫손가락에 르누아르를 꼽는다. 어릴 때, 취미로 미술을 공부하던 고모가 아버지에게 선물해 주었던 그림이 있다. 여러 번의 이사 도중에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그 그림은(ㅠㅠ) 두 소녀가 악보를 훑어가며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담고 있었다.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이유는, 그 그림이 주던 분위기 때문인 것 같다. 노랑과 빨강을 주(主)로 하여 따스하고 풍요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었고, 그림의 모델조차 장밋빛 뺨이 발그레한 두 소녀였다. 그 밝고 부드러운 분위기는 내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닿아있어 항상 그립고 소중한 이미지가 되었다. 그것이 르느와르의 그림이었음은 아주 나중에 알게 된다. 이후로도 르누아르의 그림은 아득한 그리움과 색이 주는 따스함으로.. 2023. 8. 3. 데이비드 호크니 - 수영장 시리즈 7월 26일을 기해 2023년도의 공식적인 장마가 끝났다. 50년 만에 세 번째로 비가 많이 온 것으로 기록된 이번 장마는 종료와 동시에 숨 막히는 열대야를 제자리에 끌어들였고, 나는 어젯밤 처음으로 자는 동안에도 에어컨을 틀었다. (두근두근 8월의 전기세고지서 ㅠㅠ) 바로 오늘부터 폭염이 시작되면서 이제 그늘에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절대적인 여름이 시작이다. 광화문 광장을 비롯해 전국 어린이 공원이나 공공시설에서는 수영장과 물놀이터를 개장했고, 앞뒤 재지 않고 뛰어들어 온몸을 적시며 노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부러울 뿐이다. 갈아입을 옷 같은 뒤에 일어날 일은 전혀 안중에도 없이 온몸으로 시원함을 만끽하는 저 기분을 마지막으로 느껴본 게 언제인지… 대신하여 시원한 기분이라도 느낄 수 있게 .. 2023. 7. 27. 앙리 루소 - 잠자는 집시 여자 회화의 역사에는 때로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곤 한다. 양식의 발전이라든가 시대의 트렌드 등과는 전혀 무관하게, 생각지도 못한 걸작이 마치 다른 별에서 온 것처럼 갑자기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1897년 파리의 앙데팡당전에 출품되었던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자'가 그런 류의 하나라고할 수 있겠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 짚어볼 때, 당시의 흐름 속에서 루소의 위치를 역사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미술사학자들은 루소를 라고 분류하고, 루소의 화풍에 영향을 주었음직한 선례들도 찾아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야에서 그러하듯 형식과 규정을 떠나 접해보지 못한 울림을 주는 존재를 마주하게 되면 사람이 정한 일체의 정의는 무의미해진다. 앙리 루소의 그림이 그러하다. 이상하리만큼 생.. 2023. 7. 20. 이전 1 2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