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SF계의 신성, 김초엽 작가님의 (작년)단편작,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책 리뷰입니다. 책의 줄거리 및 결말까지 모두 포함되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해주세요. 최근에 김초엽 작가의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중국성운상 번역작품 부문 금상을 수상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기도 했는데요, 두 책 모두 편지 형식으로 시작한다는 공통점이 있어 해당 책을 읽은 분이라면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점이 있겠습니다. 지구 끝의 온실도 그렇다고 하네요 :)
줄거리
책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나=현이'가 '도영 언니'에게 편지를 써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는 듯한 편지로 시작한다.
현이는 인공 장기 배양 파트의 연구원이다. 매니저와의 마찰로 원하지 않던 안구 배양 파트로 직무 이동한 것을 이유로 퇴사한 후 '솜솜 피부관리숍'의 -장기배양경험 우대- 라는 공고를 발견하고 면접 후 입사하게 된다.
먼 미래의 한국 성수동은 바이오해커, 즉 신체변형을 하려는 자들과 그런 시술을 하는 자들로 넘쳐나는 거리인데, 그 중 현이가 입사한 솜솜 피부관리샵은 인간의 피부를 변형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다.
가게의 주 손님들은 자신들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라고 믿는 '아더킨'들이 대부분이다. 자신이 인간이 아닌 물고기, 바위, 고양이 등이라고 믿는 사람들에 대해 현이는 처음에는 조금 놀라지만 그들에게 인공 피부를 이식해 주며 실재하는 욕망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봄이 되자 사장은 현이에게 정규직을 제안하고, 일은 재밌지만 불법적인 업무라는 것에 대해 회의하던 현이는 가게에 찾아온 수브다니를 만나게 된다. 수브다니가 벌써 몇 차례나 사장에게 의뢰를 위해 찾아왔던 진상 손님이라는 것을 깨달은 현이는 호기심을 가지고 수브다니를 지켜보게 되고, 그가 녹이 슬 수 있는 금속 피부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피부는 엄연한 인간의 신체 조직 중 하나로 금속으로 대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사장은 계속해서 수브다니의 의뢰를 거절해 왔던 것이었는데, 포기할 생각이 없는 수브다니를 현이가 설득하게 된다.
수브다니에게 금속 피부를 원하는 이유를 묻자 수브다니는 '녹슬고 싶다'라고 답한다. 이해하지 못한 현이가 수브다니에게 그렇다면 녹슬어 보이는 듯한 금속성의 피부를 가지는 것은 어떠냐, 사장이 그런 질감 표현을 잘 할 수 있다. 라고 설득하자 수브다니는 강경하게 '정말로 녹슬고 싶다'라고 다시 한번 말한다.
현이는 수브다니의 신체 일부를 분석해 본 후 그가 사실은 인간형 안드로이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간이 아니기에 금속 피부 이식 시술을 진행하게 된다. 시술을 성공적으로 마친 수브다니는 '여름 휴가를 가겠다'라는 말과 함께 사라지는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수브다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
수브다니는 사실 '수안 최'로 과거 '남상아'와 행위 예술을 했던 2인조 콜렉티브였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전시와 행위 예술을 하는 남상아의 파트너이자 연인으로 이름을 날리던 수안은 인간화 시술을 받게 되었고 결혼에 이르렀으나 결국 이혼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 남상아가 죽은 지 3년, 수브다니로 이름을 바꾼 수안은 남상아의 유작을 훔쳐 금속으로 만들어질 자신의 피부에 장식해 달라고 솜솜 피부관리샵을 찾은 것이다.
이러한 유명인 '수안 최'가 타국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덧붙여 그의 죽음의 원인이 불법적으로 시술한 '금속 피부'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결국 바이오해커 거리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게 된다. 이에 '나'는 당분간 해외로 도피하기로 한다.
해외로 도피한 '나'는 '도영 언니'에게 수브다니가 사실 살아있다고 고백한다. 수브다니는 남상아와의 마지막 공동 작업 속 행복했던 순간을 재현하며 현이와 사장에게 푸른 바닷속에 잠겨 녹이 잔뜩 슬어있는 사진을 보낸다. '나'는 그런 수브다니의 사진을 보며 정말 멋진 휴가라고 긍정하며 책이 끝난다.
요키의 느낀점
안녕-! 오늘은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라는 책을 가지고 왔어. 밀리 단독 출간이어서 밀리를 구독하지 않았으면 읽기가 어려울 것 같아. 줄거리와 결말까지 요약해 두긴 했지만 사실 이 책의 줄거리는 말 그대로 내용상의 줄거리일 뿐이고 사실은 줄거리에 대해 느끼는 글쓴이인 현이의 생각과 시점을 '도영 언니'에게 말하는 것들이 더 중요해서 기회가 있으면 꼭 읽어봤으면 좋겠어!
이제부턴 내용에 대한 개인적 감상이야.
수브다니는 기계에서 인간으로 또 다시 기계로 변화한다. 수브다니(수안 최)가 인간화를 한 목적은 명확하지 않다. 진정 남상아가 원해서 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혹은 남상아의 연인이었던 수안이 사랑에 눈이 멀어 잘못 판단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상아와의 결별 후 수브다니는 다시 녹이 스는 피부를 얻게 되었고 목적을 이루었다. 진정한 자신을 되찾은 것이다. 수브다니는 평생에 걸쳐 본인을 찾는 과정을 거쳤고 결국 본인이 납득 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남들이 보기엔 바닷속에서 녹이 슬어가는 어찌 보면 비참한 결말이지만 수브다니는 간절하게 원했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그러나 본인은 간절하게 원하는 욕망.
이 책은 안드로이드인 수브다니를 통해 인간이 가진 본질적이고 철학적인 질문,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지점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현이가 수브다니에 대해서 '금속성이든 기계성이든 무엇을 원했는지 모르지만 결국 그는 그가 간절히 원하던 것을 얻게 되었다.'라고 말하며 사실은 나도 '솜인형이 되고 싶었다'라는 과거의 욕망을 밝히는 지점에서 극명하게 보인다. 수브다니나 혹은 아더킨들의 욕망은 특이하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근원적인 질문과 닿아있음을.
모두가 '진짜 나'에 대한 질문을 갖고 산다. 한 번쯤 자신의 본질에 대해 고민해 봤던 사람이라면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모두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남들이 보기엔 기이해 보일지 몰라도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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