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d boy : 찰스 윌리엄 램턴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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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볼까?/그림리뷰

The Red boy : 찰스 윌리엄 램턴의 초상

by 게으른_완벽주의자 2023.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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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시선, 사람을 향하다 - 영국 내셔널갤러리 명화전
장르
전시/행사
기간
2023.06.02(금)~2023.10.09(월)
장소
서울 용산구 용산동6가,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과 영국 수교(1883년) 140주년을 기념하여 영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명화를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전시로, 라파엘로, 티치아노, 카라바조, 푸생, 벨라스케스, 반 다이크, 렘브란트, 고야, 터너, 컨스터블, 토마스 로렌스, 마네, 모네, 르누아르, 고갱, 반 고흐 등 서양 미술 거장들의 명화 52점 전시됩니다. 그동안 국내에서 만나보기 힘들었던 르네상스시대 회화부터 관람객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인상주의 회화까지, 15~20세기 초 유럽 회화의 흐름을 살피는 이번 전시에서는 서양미술 명작을 통해 미술의 주제가 신으로부터 사람과 우리 일상으로 향하는 모습을 조명합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별전시의 소개글이다.

 

10여년 전 영국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내셔널 갤러리에서의 감동을 다시 느낄 기회가 오다니 절대 놓칠 수 없었다!

그리고 리스팅 된 거장들의 이름 만으로도 설렐 이유가 충분했다!!

오픈 전부터 티켓 예매를 하고 설레어 기다렸던 전시에서는 어느 작품이던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지만 그 중 가장 Hot했던 작품은 뭐니뭐니해도 토마스 로렌스의 The red boy가 아니었나 한다.

 

화가

토마스 로렌스 경(Sir Thomas Lawrence, 1769년~1830년)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영국의 초상화가이다. 토마스 로렌스는 비교적 부유한 가정 출신으로 아버지는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세관의 변호사로 일했고, 브리스틀, 데비즈(Devizes), 옥스퍼드(Oxford), 바스(Bath)에서 여관을 운영했다. 젊은 토마스는 고객들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어 어렸을 때부터 예술적 능력을 보여주었다. 로렌스는 또한 역사적인 주제도 그렸지만, 초상화보다 덜 성공적이었다.

 

1787년 그와 그의 가족은 런던으로 이주하였고, 로렌스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학생이 되었다. 같은 해 네 장의 초상화를 왕실 미술 아카데미 전시회에 출품하였다. 당대를 대표하는 초상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 경(Sir Joshua Reynolds, 1723년~1792년)은 이 젊은 예술가에게 유용한 조언을 해주었다. 머지않아 관심을 받기 시작한 로렌스는 요크 공작(Duke of York), 잉글랜드 여왕(Queen of England), 그리고 아멜리아 공주(Princess Amelia)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의뢰받았다.

이처럼 왕실의 후원에 힘입은 로렌스는 1791년 왕립사관학교의 부관이 되기 위해 필요한 나이가 되기 전에 선출될 수 있었다. 이듬해 조슈아 레이놀즈 경이 죽자 로렌스는 그를 대신해서 국왕의 화가가 되었다. 또한 1794년에 아카데미의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이후 유럽 전역을 누비며 프랑스에서는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의 십자가를 받고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기사작위는 물론 왕립 미술 아카데미의 회장으로 까지 선출될 정도로 성공의 정점에 있던 중 갑자기 발발한 심장병 증세로 며칠동안 앓고 난 후 돌연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림의 배경

소년의 아버지 존 조지 램튼 (제 1대 더럼 백작) (1792-1840)에 의해 의뢰된 이 초상화는 토마스 로렌스가 초상화가로서의 커리어가 절정을 이루던 1825년 그려져 왕립 아카데미의 첫 전시회에 소개된다. 이후 1967년 영국 최초로 우표에 실리는 그림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19세기 낭만주의

영어로 '로맨틱시즘', '로맨틱'이라는 말뜻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인간의 감정과 본능적 욕구를 강조한 '감정적 인간'을 추구한다.Romanticism은 불어의 Roman(로망)에서 파생되었다. 이 말은 라틴어 romanice(로마니스)에서 기원된다. 로망은 처음에는 기이하고 경이롭고 환상적인 뜻으로 쓰이다 18세기 말 신고전주의(NeoClassicism)에 대립된 개념으로 낭만주의(romanticism)이란 말이 자리잡게 되었다.

 

신고전주의는 지식, 과학적으로 무지를 타파하고자하는 계몽주의이자 정적이고, 우아한 귀족 미술 양식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낭만주의는 원초적인 순수함으로의 회귀를 원하는 계몽주의이자 이성의 비합리적인 면의 발견과 인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미술 양식이었다는 점이 신고전주의와 다르다.

 

이러한 낭만주의는 거칠고, 웅장하며, 참혹한 주제를 다룬다. 당시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의 유럽은 침울한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는 신의 죽음으로부터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낭만주의 안에서도 영국의 낭만주의는 색채의 감각성을, 독일의 낭만주의는 선의 순수함을 추구하였다.

 

감상

 

 

이제 예닐곱살 먹은 소년의 초상화는 개방적이지만 사려 깊은 시선으로 그려졌다. 르네상스 특유의 감성과 전통적 묘사가 반영된 팔의 굽은 자세, 우아하지만 격식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풀어진 포즈와 레이스, 대담한 붉은 색의 벨벳 수트, 그리고 범상치 않은 특이한 배경 – 소년이 앉아있는 곳은 의자가 아닌 밤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이다. 좌측 구석을 보면 달빛이 반사되는 바다가 보인다 – 이 이 그림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바다와 바위, 고요한 달밤이 가진 대자연의 힘 안에 너그럽게 안겨있는 이 작은 소년은 연약한 존재로 보이기는 커녕, 당돌한 시선과 포즈로 인해 자연의 힘을 생각하고, 탐구하는 존재로 보이게 한다. 이는 앞선 세기에 발표된 장 자크 루소의 아동관(성선설에 입각하여 아동의 자연성을 지키는 방법으로 양육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아동을 작은 어른으로 보는 시선을 비판함)덕분에 특별한 시기로 여기게 된 아동기의 순수함과 자연이 가진 숭고한 힘을 당시의 낭만주의적 화풍으로 표현한 덕분이겠다.

 

접혀진 소년의 무릎께를 보면 작은 꽃이 있다. 그림 속 꽃은 곧 사라져버릴 아름다움, 허무함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종종 사용되어 왔고, 이 그림에서도 아이의 어린 시절은 짧게 지나갈 것임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 꽃이 예언이 되었을까.. 그림의 주인공인 찰스 램튼은 이 그림이 완성된 6년 후, 13세란 어린 나이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그림은 전시실 중앙에 배치된 위치 뿐만이 아니더라도 (어린아이의 초상화 치고)굉장히 큰 규모와, 고요한 배경과 대비되는 소년의 존재감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하지만 단순히 '인상 깊다' 라고 느껴질 뿐인 이 그림이 담고 있는 시대의 사상과, 비유와, 기교를 이해한다면 더 깊은 감동을 줄 것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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